사막으로

2023. 9. 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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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본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믿는 것만 본다. 그래서 보는 것만 쓸 수 있다고. 

 

지평선에 별이 닿아 있었다. 은하수가 흘렀고 사방에 별이 깔려 있었지. 나한테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누워 별만 보고 싶었다. 마치 나에게 우주가 말을 거는 것 같았어.

 

나와의 통화를 통해 아버지의 태도를 단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것이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나의 고된 노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치료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망할 수 없었으리라. 나에게도 그럴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 인생에 권한이 없었듯이.

 

자신의 등보다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리윙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등딱지를 메고 걷는 육지거북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서 듬직함이라고는 절대 느낄 수 없었지만 모종의 생존력이 느껴졌다. 어디를 가든 살아남을 것 같은, 그리고 나를 위해 언제든 그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줄 것 같은. 

고백은 내가 먼저 했다. 네 가방에 내 물건도 함께 넣어줬으면 좋겠어. 리윙은 대답 대신 내 손에 들려 있던 물통을 자신의 가방에 넣고 깍지를 꼈다. 

 

엄마의 병은 그녀가 살아오며 들이마신 숨의 값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필시 외로움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물질이 몸속 곳곳에 잘 스며들어 결합할 수 있도록 외로움이 촉매 역할을 했겠지. 그리하여 병의 진행속도를 가속시키지 않았을까. 마흔다섯에 혈관이 터진 이유를, 나는 그렇게밖에 납득하지 못했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링거를 맞았고,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링거만 다 맞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자는 말을 웃으며 엄마에게 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가,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로서 나와 나눈 대화가 그것이 영영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나는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 혹 나를 잊게 되더라도 사랑했다는 것은 잊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엄마의 뇌는, 그 이후로도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기억을 쌓지 못했다. 현재의 행복만을 느끼는 삶.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만을 사는 삶. 엄마는 마치 신인류 같은 인간이 되었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 요즘에는 그 반대 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아버지는 객지에서의 이야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대화를 나눌 상황이 되지 못해서 그랬겠지. 내가 뱉고도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방금 한 말을 취소하겠다고 뒤늦게야 수습했지만 리윙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인데?

  '모든 걸 다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그런 거잖아. 이를테면 네가 지금 눈을 뜨고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

  그렇다면 네 간격에도 외로움이 생겼겠네.

리윙은 나를 가만 끌어안았다. 리윙은 그때 내 표정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리윙이 놓을 때까지 안겨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외롭구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이 덤덤해지는구나.

 

마음의 여유는 오나전히 소멸했다. 그때부터 세상의 척박함과 별개인 또 다른 사막이 내 안에 생겼다. 이미 내 세상이 피폐하고 좁아서, 나는 아버지의 삶이 어떤지 일부러 짐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아버지가 말했던 사막의 밤하늘이 딱 그날 하루, 아주 운 좋게 뜨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고, 정말로 우주의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속삭인 것은 아닐까 오래도록 고민했다. 나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보낸 신호가 차원을 돌다가 다시 지구에 닿았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도로가 없는 우주를 어떻게 달리느냐고 물었다. 정말로 궁금해 물은 것은 아니겠지. 영원히 젊을 것 같던 아버지는 어느새 머리가 전부 새하얗게 셌고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해졌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요. 바다에도 도로는 없지만 배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잖아요.  그렇구나. 평생 열심히 땅에 도로를 깔았더니 내 딸은 도로가 없는 길을 가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주에 도로를 깔았어야 했어. 아버지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곧 머뭇거리는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고는 말했다.  엄마는 걱정 마라. 이 아빠가 있잖니. 아빠도 이제 엄마 보는 건 익숙해서 아무 문제없거든. 자식은 부모 걱정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아버지가 설령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했더라도, 내 출발지가 그곳이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 우리가 갈 수 있도록 그 행성에 텔레포트 설계도를 보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야 그 행성에서 우리의 숙제를 완수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가 잃은 공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내 메시지가 닿는 속도만큼 나는 그 행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전되지 않도록 우주 밖으로 외로움을 내던지면서.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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