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any frens around me

2023. 9.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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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에게

 

비 내리는 날 식탁에 앉아 너에게 첫 편지를 쓴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네가 태어나기 한참도 전에, 네 엄마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해. 너도 알겠지만, 네 엄마와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어. 나는 중학교를 대안학교에서 다녔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학교는 외국 영화에나 나오는, 질서정연한 사립학교 같았기 때문에 난장판인 새로운 교실 풍경이 익숙하지가 않았어. 모두가 나한테는 날라리로 보였지. 그때 우리는 첫 짝꿍이 되었어.

삐딱하게 앉은 네 엄마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해. 짝으로 쟤만 아니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딱 걸린 거야. 작은 몸집에, 눈은 부리부리하고 당당히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어. 첫날부터 교복 치마를 줄여왔더라. 심드렁한 목소리로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며 같이 보자고 하고, 내 교과서를 중앙에 놓더니 이따 깨워달라며 졸기 시작했어. 나는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했지. '화장실로 끌려가 맞는 건 아닐까?' 겁을 먹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거지. 그 애는 그냥 머리만 뽀글뽀글하지, 나보다 훨씬 순박하고 착한 애였어.

 

우린 처음부터 그렇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어. 나는 딴 애랑 친했고 네 엄마도 마찬가지였지.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서로가 유일한, 그런 사이는아니었던 거야. 그러다 한 학년 올라가면서 또 같은 반이 되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절친이 되었지. 네 엄마를 우리 집에 초대했던 날이 떠올라.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나는 그 동네에서 제일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 학교에 다닌다는 건 같은 동네를 공유한다는 거니까, 대충은 집안 사정이 어떤지 들통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학창 시절 내내 모욕감을 느꼈어.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아파트에 산다고 말했는데, 반응이 뜻밖이었어. 네 엄마는 아무렇지 않아 했지. 나는 그 무심함이 너무도 고마웠어. 

우리는 침대에 함께 누워 눈물을 쏟아가며 이야기를 나눴어. 네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지은이의 아버지가 몇 년 전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내가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살았다는 사실, 그래서 실은 열등감 덩어리였고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종종 주눅들 일이 많았다는 것...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주고받았지. 홀딱 벗은 기분이었어. 이렇게 내 속내를 완전히 털어놓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 그때가 처음이었어.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 각자의 불행이 우리 말 속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별것 아니라는 듯. 그 순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예감했어. 그리고 다음날 네 엄마처럼 교복을 줄였지. 

 

그때부터 우리는 모든 걸 함께했어. 각자의 생일과 보통의 매일매일 그리고 문구점, 분식집, 공원, 교실, 복도, 운동장에서도 함께였어. 방학마다 추운 명동 거리 같은 곳들을 함께 쏘다녔지. MP3로 같은 노래를 듣고, 성적보다 높은 대학의 이름을 공책 앞에 크게 써두고, 모의고사를 망치고, 수도 없이 쪽지를 주고받고, 싸구려 반지를 나눠 끼고,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때웠지. 가끔은 일탈도 했어. 덕수궁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담임 선생님에게 대놓고 부탁을 했지. 선생님은 다른 애들 몰래 야간자습을 빼주셨어. 우리는 그 당시 유행하던 유니클로 카디건을 입고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지하철에 올랐어. 폴더폰은 화질이 너무 구렸거든. 우리는 예쁜 포즈를 취하는 법을 몰랐어. SNS라는 말도 없었던 때라 누구한테 자랑할 필요도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가장 우스꽝스럽게 나온 게 제일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어. 

어떤 날은 담임 선생님이 즐겨 간다는 광화문의 식당을 메모해두었다가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러 갔지. 우리는 뭐든 반으로 나눠 먹었어.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부족했거든. 밥을 다 먹고 나서 근처 교보문고에 가 구경을 했어. 그래도 좋았어.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웃다가 눈물이 맺히는 경우도 많았지. 나는 네 엄마가 나의 기쁨이나 슬픔을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 좋았어. 방학 때는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게 되어 떨어져 있었는데, 우린 서로 A4 용지로 두세 장이 될 만큼 긴 메일을 매일 주고받았어. 주말이면 배터리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했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던지.

 

그러다 3학년이 되었어. 그 시절 우리가 제일 잘 하던 짓은 다른 친구들을 따돌리는 일이었어. 단둘이서만 있고 싶었거든. 친구들 무리와 있을 때면 우린 각자 다른 핑계를 대고 다음 장소를 정해 밀회했지. 아마 친구들이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로 굳이 서운해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 사이는 누가 봐도 당연해서 낄 생각도 못 했던 게 아닌가 싶어. 너네 사귀느냐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살았으니까. 우린 그해 나쁜 성적을 받고 나란히 재수를 했지. 한 해 뒤 우리는 다른 대학교로 각자 진학했고, 새로운 상황에 들어설 때마다 새 친구들을 사귀었어. 서로를 못마땅해하기도 했지. 네 엄마가 내게 새로 사귄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나는 시큰둥해했지. 그래 봤자 나를 대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질투한 게 맞아. 그래도 그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져서 아주 중요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마다 다시 서로를 찾았어. 우리는 연인 같았어. 그것도 5년 정도 사귄 오래된 연인. 우리는 밀려드는 새로운 유혹들 가운데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입지를 지켜냈지.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는 없어도 꼬박꼬박 시간을 맞춰 같이 공연을 보고 기차를 탔어. 서촌이나 한남동 같은 핫플레이스도 가보고, 우리에게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광고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해보기도 하고, 네 엄마가 에뛰드하우스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미술학원 일이 끝나면 데리러 가고. 공짜 티켓이 생기면 연락하고. 싸울 때도 연인같이 살벌하게 싸웠어. 특히 서로에게 소홀하다 싶으면 불같이 화를 냈지. 뒤도 안 돌아볼 것처럼 매서운 말을 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던 건 서로가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어. 스물셋이 되고 우리는 빡세게 반년 동안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떠났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지. 그 당시 '청춘'이라는 말은 대대적인 유행이었기에 우리는 조바심이 났었던 거야. 책만 펴면 자꾸 떠나라는 거야. 그게 청춘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한 달간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지내보기로 했어. 로마에선 소매치기를 당했고, 피렌체에선 반지하 방에서 지냈지. 파리에서는 섹스숍을 구경하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크게 다투기도 했어. 비행기를 따로 타고 가네, 마네 할 만큼. 내가 게스트하우스 사장이랑 잠시 사랑에 빠져버려서 네 엄마를 거의 버리다시피 했거든. 그 점은 아직도 깊이 반성하고 있어. 내가 아주 많이 미안한 부분이야. 

 

어쨌든 여행은 완벽했어. 찬란하고 황홀한 잊지 못할 순간들로 빽빽했지.다만 그게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귀국 후 네 엄마는 네 아빠와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햇고 1년 뒤 네가 태어난 거야. 결혼식에서 오열하는 건 나뿐이었어. 그 뒤로 우리는 자주 볼 수 없었어. 네가 태어나고 나서는 더더욱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지. 솔직히 네가 미웠어. 네게 내 친구를 뺏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 나와 모든 걸 함께하던 친구가, 서로가 없이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던 친구에게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다는 게, 그 존재에 묶여 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았어, 우리 관계가.

 

네가 아주 어릴 때 같이 갔던 레스토랑에서 너의 울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와 바닥에 흘린 음식물들, 그 모든 게 나는 어색하기만 했어. 말쑥한 차림을 한 두 아가씨의 도도한 식사와는 거리가 멀었지. 네 엄마는 어딜 가나 미안해해야 했어. 어느 날 정신없는 식사를 마치고 우리 셋은 카페로 갔어. 아마 너는 기억하지 못할 거야. 무릎에 앉은 너는 졸음을 참으면서 깨어 있었지. 네 엄마는 이런 모습이 처음이라고 했어. 아마 너는, 말을 할 수 없어도 알았을 거야. 내가 네 엄마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걸. 그 사이에서 너는 차마 잠들 수만은 없어서, 아기였던 너도 이 친밀한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서, 꾸벅꾸벅 졸음을 참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때 느꼈어. 내게 가족이 한 명 더 생겼다는 걸. 그때야 인정하게 됐어. 부족하지만, 어색하지만, 너를 있는 힘껏 사랑해주기로 마음먹었어. 그때부터 누군가가 홀로 유모차를 끌고 있으면 거들게 됐고,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미소를 지어주고, 놀이터에서 애들이 다치진 않는지 지켜보게 됐어. 그리고 엄마들한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노려보기도 했어. 어떤 엄마를 돕든 그게 꼭 네 엄마를 돕는 것 같았거든. 너를 지키는 것 같았고. 그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여전했지만 우리는 서로가 속한 미래를 다시 꿈꾸기 시작했어. 네가 자라고, 걷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니까 네 엄마에게도 조금의 여유가 생기더라. 

 

모든 게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던 거야. 단지 조금 성숙했을 뿐이고, 돌봐야 할 게 조금 늘어났을 뿐이었어. 다시 들여다본 기억은 새것처럼 말끔했어. 그것은 가장 찬란한 시절을 함께한, 그 어떤 시간의 공격에도 균열이 생기지 않는 기억이었어.

어느 날 네 엄마에게 물었어. "지은아, 행복해?"

그 질문에 네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지. "응, 행복해. 은성이를 낳은 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야."

앞으로도 네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10여 년간은 전적으로 내 친구를 빌려주도록 할게.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너와 나만의 우정도 쌓아보려고 해. 엄마한테 말 못 하는 고민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게. 네가 유럽 여행을 하고 싶을 때 싼 비행기 티켓과 가성비 좋은 숙소를 대신 찾아주는 이모가 될게. 훗날 네게 진정한 친구가 생긴다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첫 애인이 생기면 내 일처럼 축하해줄게. 그때까지, 내 친구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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